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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면대와 악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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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보

조율과 로 위에의 듀오 연주

조율과 류한길의 듀오 연주

조율, 로 위에, 류한길 [음악 공연] 단 하나의, 몸짓들 23.12.22 - 23.12.22

본 공연은 조율과 로 위에, 조율과 류한길이 조율의 글로 부터 비롯된 로 위에의 악보 <htrb_단 하나의, 몸짓들> 를 연주하였습니다.

 

로 위에 <htrb_단 하나의, 몸짓들> 바로가기

 

 

 

단 하나의, 몸짓들

 

이 공연의 출발점이 조율의 글이기에, 그 맥락을 더듬어 보고자 책에 실린 글의 전문을 찾아 읽었습니다. 읽는데 익숙한 눈은 빠르게 글자들을 읽어내려 가면서도, 그 속에 담긴 그의 마음은 가늠하기 어려웠습니다. 마치 모든 문장이 날카롭게 벼려진 날붙이처럼 어지러이 빛을 난반사 하고 있는 듯 했습니다. 느긋하게 흘러가는 대로 그럭저럭 살아가는 내 성격으로는 도저히 알기 어려운 긴장과 몰두입니다. 아무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나는 그의 글 속에 등장하는 이 매력적인 질문에 동참하고 말았습니다.

「단 하나의 곡을 듣고 그 곡을 만든 이를 영원히 사랑할 수 있는가」

이런 문장을 마음에 새기는 것이 음악가 자신에게 갖는 의미에 대해, 혹은 단 하나의 무결한 세계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미리 말해두자면 이날 관객에게는 두 장의 텍스트가 순차적으로 제시되었습니다. 첫 번 째 장에는 원래의 맥락에서 떨어져 나온 조율의 글 일부와 빌렘 플루서의 「몸짓들」 중 일부가 적혀 있습니다. 두 번 째 장에는 동일한 텍스트를 로 위에가 일부 수정한(굵은 글씨 부분) 것이 적혀 있습니다. 형식적인 측면에서 보면 이 두 장의 텍스트는 공연 속에서 퍼포먼스의 일부로 흡수되어 오브제의 기능을 합니다. 또 이렇게 일대 일로 대응하듯 두 장의 텍스트가 제시된 것이기 때문에 관객은 자연히 다른 그림 찾기를 하듯이 번갈아 보면서 그 내용을 파악하려 애쓰게 됩니다. 여기 적힌 두 가지의 텍스트는 전체 공연의 내용적 흐름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일단 일부가 수정된 두 개의 데칼코마니 텍스트가 내게 준 인상에 대해 이런 식으로 말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수채물감 중에는 간혹 이름에 ‘셰이드shade’를 붙인 색들이 있습니다. 예컨대 블루 옐로우 셰이드 혹은 블루 레드 셰이드 같은. 이름에 ‘셰이드’가 붙은 색은 원래의 색보다 필연적으로 명도와 채도가 낮습니다. 블루 컬러에 옐로우 셰이드가 섞이면 이 블루는 낮아진 채도의 다정한 그린 칼라의 뉘앙스를 갖게 됩니다. 만약 블루 컬러에 레드 셰이드가 섞이면 우울하게 가라앉는 보라색 느낌이 더해집니다. 조율의 글이 쨍한 블루라면 수정된 텍스트는 거기에 브라운 셰이드가 섞인 느낌입니다.

 

먼저 조율이 닥소폰을 연주합니다. 이어 로 위에의 타이핑이 시작됩니다. 사운드의 측면에서 이 타자기 소리는 음악적 어울림을 추구하는 것은 전혀 아닌 듯합니다. 적어도 리로이 앤더슨 Leroy Anderson의 The Typewriter 같은 방식으로는 말입니다. 그러나 두 아티스트의 독립적인 움직임이나 어둑한 갤러리 공간의 분위기, 타자기 소리와 닥소폰 소리의 상호간섭이 어떤 묘한 긴장감을 만들면서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관객은 채도와 명도가 서로 다른 사유의 단서를 양 손에 들고 고개를 갸우뚱 하면서 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음악을 바라는 방식은 다양합니다. 그리고 여기서는 공감과 도취가 아닌 객관적 바라보기와 인식이 은근히 종용됩니다. 흥미롭습니다.

이어지는 류한길과 조율의 연주는 음악적 공명이 부각되는 것이었습니다. 차차 고조되는 연주의 후반부에 가서는 어떤 신기루 같은 도취의 순간이 약간의 고통과 함께 내게도 슬쩍 밀려왔습니다. 이런 낯설고 어려운 음악에 우리는 어떤 식으로 스며들 수 있을까요. 적어도 그 공간 안에서 귀를 기울이던 우리에게는 어떤 불친절한 자유로움과 모호한 가능성이 함께했던 것 같습니다. 전자장치를 통해 증폭된 음의 파동처럼 심장 소리가 귓가에 두근두근 울립니다.

 

 

 

나무로 만든 날 Wooden tongue

 

닥소폰 연주를 본 것은 처음이었는데 무척 흥미로운 악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나무 날의 재질과 밀도, 형태, 크기에 따라 전혀 다른 소리가 날 것 같습니다. 또 아티스트가 활을 긋는 동작과 힘에 따라서도 소리는 달라지겠죠. 악기제작자가 악기를 만드는 동안 열심히 깎고, 사포질을 하면서도 결국 이 날이 어떤 소리를 만들어 낼 지는 알 수가 없을지 모릅니다. 자, 그렇다면 닥소폰의 소리는 다른 악기들에 비해 전적으로 아티스트 자신이 탄생시키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문득 나는 적당한 나무를 골라 정성들여 이 악기의 아름다운 날을 한번 만들어 보고 싶어 졌습니다. 무한한 소리의 가능성을 품은 침묵의 나무 조각이라니.

조율의 닥소폰 소리는 숨소리처럼, 비명 소리처럼 지하의 백색 공간을 진동시켰습니다. 이런 전자음악라이브 공연이 음악가 본인에게 어떤 작용을 일으키는지는 그의 글을 통해서 가늠해볼 뿐입니다만, 관객과 함께하는 그 강렬한 몰입의 순간들이 어떤 식으로 아티스트를 이 세계에 제대로 존재하게 하는가를 즐거운 마음으로 생각해봅니다.

 

 

/박주영

(ENG)

Just one, gestures

 

Since the starting point of this music performance is the writing of musician Joyul, I found and read the entire article in the book to examine the context she described. My eyes, accustomed to reading, quickly read the sentences, but it was difficult to estimate her inner feelings in them. It was as if all her sentences were reflecting giddy light like sharpened blades. That kind of tension and immersion was something that was difficult for me to understand, as I tend to just go along with the flow. However, now I have nevertheless joined this fascinating question that appears in her writing.

“Is it possible to listen to just one song and love the person who compose it forever?”

It is a question of the meaning of having a sentence like this on the heart of a musician, or it is also a question of the only and perfect artistic world.

 

To tell you in advance, two texts were presented sequentially to the audience on this day. The first page contains fragments of Joyul's writings taken out of their original context and excerpts from Vilém Flusser's book 「Gesten : Versuch einer Phänomenologie」. On the second page, the same text as on the first page is written with some modifications (bold writing) by lo wie. In terms of formality, these two texts are absorbed as part of the act in a musical performance and function as art objects. In addition, since two texts are presented as if they were responding one-on-one, the audience naturally tries to grasp the content by looking at it alternately as if playing spot the difference puzzles. What do these two texts mean in terms of content in the overall flow of this music performance? I think I can express in this way the impression I got about the two decalcomanie texts that have been partially redacted.

Some of the watercolor paints have a 'shade' to their name. For example, there is blue-yellow shade or blue-red shade. A color with a 'shade' in its color name inevitably has lower brightness and saturation than its original color. When blue is mixed with a yellow shade, this blue has a warm green nuance with a low saturation. If the blue color is mixed with the red shade, it adds a depressing purple nuance. If Joyul's writing is clear blue, the revised text feels like a mixture of blue and brown shade.

 

First, Joyul plays the daxophone. Then lo wie begins typing. In terms of sound, her typewriter sound doesn't seem to be pursuing a musical mingling with the sound of a daxophone. At least not in a similar way to Leroy Anderson's The Typewriter. However, the independent movement of these two artists, the atmosphere of the dim gallery space, and the interference of typewriter and daxophone sounds stimulate the audience's imagination, creating some strange tension. The audience listens to music while glancing at two pages of writing in which different thoughts are expressed. There are so many different ways to crave music. And in this performance, objective view and perception, not light empathy and intoxication, are secretly urged. It's very interesting.

The next performance by Ryu Hankil and Joyul highlighted musical resonance. In the latter half of this gradually escalating performance, a moment of intoxication like a mirage crept into me with some auditory pain. How can we immerse ourselves in this strange and difficult music. At least for us who listened in that space, there seemed to be some unkind freedom and ambiguous possibility. My heart pounded in my ears like a sound wave amplified through an electronic device.

 

 

 

Wooden Tongues

 

It was my first time to see the Daxophone, and I thought it was a very interesting instrument. Perhaps it will sound completely different depending on the material, density, shape, and size of the wooden tongue. Also, the sound will change depending on the gesture and power of the artist. Even though the musical instrument maker works hard to carve and sand the wood, it's hard to know what sound it's going to make. Well, then I don't think it's an exaggeration to say that the sound of the daxophone is entirely created by artists compared to other instruments. Suddenly, I want to choose the right wood for this and make a beautiful tongue of this instrument. It has the potential to make a huge variety of sounds, but it's funny that it's just a quiet wooden tongue of its own.

The sound of Joyul's daxophone vibrated the white space, sometimes like an exhale, sometimes like a scream. I can only guess through her writing what effects electronic music live performances have on the musician herself, but it is a joyous experience to think about how those intense moments of immersion with a audience make the artist exist in this world properly.

 

/Juyoung Park